스포츠 코리아 시작

신생국의 보스톤마라톤 세계제패 : 스포츠 코리아의 시작

 

1945년 해방과 함께 이 땅의 체육계는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일제 말기 해체됐던 체육단체들이 재결성되기 시작했고, 광복 후 최초의 전국대회인 자유해방경축전국종합경기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어 10개 종목에서 선수들이 기량을 겨뤘다. 그뿐 아니라 이화여대엔 체육학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해방 후 온 국민을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스포츠는 역시 마라톤이었다. 해방과 함께 손기정과 남승룡은 마라톤보급회를 조직해 마라톤 재중흥을 위해 각지의 유망주 발굴에 나서는데, 이때 등장한 이들이 바로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자인 서윤복과 함기용이다. 이들은 서울 돈암동 손기정의 집에 마련된 합숙소에서 훈련을 하게 된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우승 당시 시상대에서 일장기가 오르고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금메달을 목에 걸고 고개를 숙여야 했던 손기정은 그때의 울분을 잊지 않고 자기 집 마당 구석에 세워진 기둥에 태극기를 올렸다. 선수들이 아침 6시에 기상을 하면 기둥에 태극기부터 올리게 하고 함께 〈애국가〉까지 부르고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동네 주민들의 항의로 곧 중단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들에게 마라톤은 곧 ‘조선’이었고, ‘한국’이었다.

1947년 조선통신은 조선육상경기연맹에 초청장 한 부를 전달한다. 보스턴 마라톤대회 조직위원회가 보내온 초청장이었다. 대회 주최측이 베를린올림픽 1, 3위를 한 선수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수한 선수를 초청하려는 것이었다. 1940년, 44년 올림픽은 2차대전으로 열리지 않았기에 당시 가장 최근 올림픽 마라톤 입상자는 바로 36년 대회 때의 손기정과 남승룡이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출전을 준비하려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남한에 정부가 수립된 게 48년이니, 그땐 정부라는 게 없었다. 사실 당시 한반도는 굉장히 혼란스러울 때였다. 국내파, 국외파로 갈린 남한의 지도자들은 정국 주도권 쟁탈전에 빠져 있었고 연일 찬탁 · 반탁 시위가 경쟁하듯 열릴 때였다. 또 실제로 나라를 지배한 세력은, 해방군인지 점령군인지 헷갈리는 미 군정청이었다.

해방 후부터 스포츠를 취재했던 원로 언론인 조동표 기자의 당시 기사를 보면 그 시절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군정청 문교부의 허락을 받고, 또 군정청 직원들이 모금해 전달한 여비까지 챙겨 장도에 오른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이 세 사람의 이후 여정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또 한편으론 더 이상의 코미디가 없을 정도이기도 했다. 미군 군용기를 타고 떠난 세 사람은 군용기가 호놀룰루에 도착한 후 다른 군인들이 다 내리고도 내릴 수가 없었다. 왜 못 내렸을까. 이륙 전 승무원이 매어준 안전벨트를 풀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자 이번엔 가지고 간 쌀자루와 고추장을 세관에 빼앗겼다. 그들의 힘의 원천이자 승리를 보장하는 비장의 음식이 몽땅 날아가버린 것이다. 미 군정청이 발행한 여행증명서도 문제였다. 그 증명서는 태평양점령군 사령부가 발행했기 때문에 사령부의 관할 영역인 호놀룰루까지만 통했으므로 미국 본토까지 가기 위해선 새 증명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민씨 성을 가진 한국인 목사의 집에서 사흘을 묵어야 했다.

발이 묶인 서윤복과 남승룡은 이튿날 연습에 나선다. 그런데 호놀룰루 시내를 달리다 이들은 길을 잃고 말았다. 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민 목사 집에서 기다리던 손기정도 애가 타기 시작했다. 그도 길을 나섰다. 헌데 그 역시 길을 잃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찾아 헤매다 모두 길을 잃고 만 것이다. 결국 민 목사가 경찰에 신고해서야 이들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날벼락 같은 호놀룰루 일정을 마친 그들은 시장의 배려로 쌀과 고추장을 돌려받고 샌프란시스코행 군용기에 올랐지만 그 여정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군용기는 이들을 샌프란시스코의 군 비행장 활주로에 내려주고는 마치 버스처럼 횡하니 가버렸다. 한국의 국가대표 마라톤팀이 이역만리 밀밭으로 둘러싸인 활주로에 짐과 함께 버려진 것이다. 마침 지나가는 지프차를 서윤복이 뛰어들어 세웠는데 운 좋게도 차에서 내린 미군은 부평에서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중사였다. 그는 세 사람을 자기 막사로 데려가 재워주고는 다음날 샌프란시스코의 민간비행장까지 안내해주었다.

이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뉴욕행 비행기를 타면 되었다. 그런데 자리가 둘밖에 없으니 한 명은 다음 비행기로 가라는 것이 아닌가. 함께 가야 한다고 했지만, 직원은 손기정과 남승룡만 밀어넣어 태우고는 짐까지 실어버린다. 혼자 남은 서윤복. 서른 중반을 넘어선 손기정과 남승룡은 외국 경험도 많았지만 스물다섯 서윤복은 그렇지 못했다. 그 울상을 보고 둘은 다시 내려 서윤복과 함께 버텼다. 결국 한 신사의 양보를 얻어내 마침내 셋이 함께 탔다.

4월 3일 서울을 출발해 엿새간의 코믹 로드무비와도 같은 여정 끝에 보스턴에 당도했지만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서 온 그들을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한 명은 풋내기였고 다른 하나는 11년 전 올림픽 동메달 외엔 내세울 게 없는, 나이 사십줄을 바라보는 한물간 마라토너. 그러나 이들은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서윤복은 1착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해괴한 일을 견뎌야 했다. 마치 고난과 역경을 돌파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조국 대한민국의 축소판 같았다. 우승을 눈앞에 두고 홀로 달려 나가는데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짖으며 달려든 것이다. 서윤복은 용감해서인지 겁이 나서인지 달리다 말고 오른발로 그 개를 걷어찼다. 개는 도망갔지만 서윤복은 중심을 잃고 나동그라졌다. 그사이 뒤에 뒤처져 있던 경쟁자가 앞서 나갔다. 다시 부리나케 뒤쫓아가는데 이번엔 신발끈이 풀려 너덜거렸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던 그는 그냥 내달렸다. 그리고 앞서 나간 선수를 따라잡아 1등으로 골인한다. 조선의 독립만큼이나 쉽지 않았고 그만큼 감격적이었다. 게다가 해방 후 한국의 국제무대 첫 출전에 첫 우승이었다. 최초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것이다. 남승룡 역시 역주 끝에 12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서윤복이 우승하자 눈물을 흘린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이들을 재워준 보스턴 교민 백남용이었다. 백남용의 집에서 축하파티가 열리자 평소 인사도 받지 않고 자기들 동네에 황인종이 들어와 사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백인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이역만리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서윤복이 ‘한방’에 날려준 것이다.

이들은 결국 당시 뉴욕에 와 있던, 훗날의 초대 상공부장관 임영신의 제안으로 뉴욕에서 LA까지 40여 일에 걸친 교민 방문 행사를 하게 된다. 특히 워싱턴의 호텔에서 열린 우승기념 축하연은 당시 뼈저리게 겪었던 약소국의 서러움을 해소해준 감격적인 행사였다. 당시 한국은 워낙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가난한 나라여서 대사관에서 미국 유명 인사나 외교사절을 초청하면 도무지 오질 않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축하연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행사장이 꽉 들어찼다. 역시 약소국에겐 스포츠를 통한 외교가 최고였다.

18일간 배를 타고 인천으로 귀국한 이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금의환향이었다. 세계기록으로 우승한 서윤복에게 감격한 김구는 발로 세계를 제패하라는 뜻의 ‘족패천하’ 휘호를 보내기도 했다. 코흘리개 촌뜨기 같던 코리아는 이렇게 ‘세계 제패’의 맛을 보게 됐고, 온 국민은 열광했다. ‘스포츠 코리아’의 시작이었다.    

참고 : KOREA 이름으로 올림픽 첫 출전

11 thoughts on “스포츠 코리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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