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월드컵 첫 출전 - Korean History of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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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현해탄에 빠져 죽어라”

1950년 한반도를 ‘동족상잔의 비극’의 무대로 만들어버린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음으로써 마무리된다. 약소국이었던데다 전쟁까지 치르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중에도, 피란중에도 스포츠는 달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끊어질 수 없는, 역사의 한 줄기가 된 것이다.

한국축구 월드컵 첫 출전 기회는 해방이 된 지 9년 만에,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1년도 안돼 찾아왔다. 1954년 제5회 스위스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한국은 중국, 일본과 한조에 편성됐는데, 중국이 출전을 포기해 일본과 겨뤄야 했다. 문제는 예선경기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국가대표팀은 서로의 나라를 오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해방된 지 10여 년이 됐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이 대단히 강했고, 무엇보다 당시 양국간엔 국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 만큼은 고집불통이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일본 국가대표팀이 한국 땅 밟는 꼴을 못 보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승만의 대일관은 다소 헷갈리는 면이 없잖았다. 1900년대 일본이 우리와 통상하게 된 것은 우리의 독립과 부국강병을 위한 것이니 일본과 강화조약을 맺은 2월 7일을 경축일로 하자고 주장하기까지 했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반일독립운동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막상 건국 이후 친일파 청산에는 소극적이었다. 해외파였던 그가 국내 지지기반이 없어 친일파라도 끌어안아야 했던 정치적 현실 때문이긴 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는 대통령이 된 후부터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하기까지 일본에 대해 극단적으로 적대적이었고, 스위스월드컵으로 일본팀이 우리 땅에서 경기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어르신(?) 눈에 흙이 들어가게 할 순 없고, 결국 고육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일본에서 두 경기를 모두 치르는 것이었다. 사실 이 대통령은 한국팀이 일본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 있는 재일체육회가 일본의 재일동포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와달라며 출전비용까지 부담하겠다고 나서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한 끝에 대통령이 출전을 허락하게 된다. 그러나 선수단 출발 전 이 대통령은 선수단에게 “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져라“는 협박과도 같은 격려를 했다.

다른 날도 아닌 삼일절에 한국선수단은 일본 하네다공항에 도착한다. 일제 36년은 물론이고 해방 이후에도 단일팀끼리의 민간 스포츠 교류는 있어왔지만 태극기 달고 한국과 일본이 맞붙는 건 처음이었다. 당시 스물두 살로 대표팀 막내였던 최광석은 이렇게 말한다. “마치 전쟁을 하러 적진에 들어가는 기분이었지요.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모두 빠져 죽으라고 했다’는 말은 나중에 누가 지어낸 것 같은데, 사실 그때는 일본에 패하면 국내에 돌아오기 힘들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급하게 팀을 꾸려서인지 그때의 선수 가운데엔 지금 같으면 도저히 선발되기 힘든 나이의 선수들도 있었다. 박규정은 서른아홉이었고, 정남식은 서른일곱이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최광석의 아버지뻘이었다. 또 이때 이미 ‘해외파’도 있었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고 태평양전쟁이 격화되던 1942년 일본이 조선에서 모든 단체경기를 금지시키는 바람에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중국의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지로 건너간 것이다. 당시 베이징은 프리미어리그에 비견될 아시아 축구의 메카였다. 축구도 할 수 있고 일제의 강제징용도 피할 수 있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축구를 했고, 해방 후엔 귀국해 축구 생활을 이어간 이들이 꽤 있었다.

3월 7일 메이지신궁 경기장에서 마침내 첫 한일전이 열렸다. 한국팀은 워낙 긴장했던지 경기 시작 15분 만에 선취골을 내줬지만 이후 연속 골을 터뜨려 5대1의 큰 점수차로 일본을 눌렀다. 일주일 뒤엔 2차전. 그러나 1차전을 대승으로 끝낸 한국선수들은 긴장이 풀어져 지나치게 먹고 마셔서인지 2대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래도 1승1무의 성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선수들은 군용기를 타고 부산 수영비행장에 내려 기차를 타고 상경했는데, 멈추는 역마다 환영인파로 인산인해였다. 사람들은 창문으로 이들에게 떡이며 과일이며 온갖 먹을 것을 보따리로 밀어넣어 줬다.

월드컵 역사상 최다골 내주는 진기록

그러나 월드컵 본선 첫 출전은 당시의 나라 신세만큼이나 고난의 연속이었고 실수만발(?)이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표를 구할 수 없었다. 버스나 전차 타듯 공항 가면 비행기를 타는 줄 알았던 이들은 일본에 가서야 비행기표를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표를 한 장 한 장 모아 10장까지 만들었고, 막판엔 이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영국인 신혼부부가 양보하는 바람에 12명이 간신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경유지인 이탈리아에서는 한 기자가 도대체 월드컵이 언제 열리는지 알기나 하냐고 물었다 했단다. 월드컵 개막일을 이틀이나 지나 취리히 현지에 도착하니 경기 시작 10시간전 이들은 자신들이 뛸 경기장 구경도 못 해본 채 경기에 나서야 했다.

선수단은 고작 12명, 감독 1명에 선수 11명이었으니 교체 선수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장에 도착해 유니폼을 입으려는데 이게 웬일, 유니폼에 등번호가 없다. 유니폼 제작업소에서 등번호 붙이는 걸 깜빡한 것이다. 주최측이 부랴부랴 천으로 만든 숫자들을 핀으로 등에 고정시켜 준 덕에 이들은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상대는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 당시 한국축구는 1956년, 60년 아시안컵 1, 2회 대회를 우승할 정도로 아시아에선 강국이었다. 그러나 세계무대는 달랐다.

시차 적응도 없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여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최강 헝가리를 상대한 한국팀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 푸스카스에게 첫 골을 허용하면서 월드컵 역사상 최다골인 9골을 내주는 진기록을 세운다. 다음 상대인 터키에겐 7골. 두 경기에서 한국팀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마지막 경기인 서독과의 경기는 한국의 탈락과 서독의 조별 리그 통과가 확정됨에 따라 생략되었다. 군대 짬밥 먹으며 맨땅에서 연습한 약소국의 첫 월드컵 성적은 초라하다기보다는 이렇게 애절했다. 탈락이 확정된 후 이들은 다른 축구선진국의 경기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경기장까지 태워줄 버스를 대절할 경비가 없어서였다. 경기 후 이들은 이탈리아로 가서 그곳 축구팀과 경기를 하고 받은 300달러로 로마를 거쳐 비행기를 타고 귀국할 수 있었다.

최하위의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투지만큼은 출전국 중 최고였다. 동양에서 온 평균신장 170cm에 평균체중 60kg의 왜소한 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경기장에 와서는 등번호도 없는 유니폼을 발견하곤 어쩔 줄 몰라 했던 선수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줄줄이 다리에 쥐가 나 경기장 라인 밖을 들락날락하고, 골을 계속해서 먹고… 그래도 이들에게서는 불굴의 투지가 엿보였다.

참조 : 스포츠 코리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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